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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09.05.11 엄마를 부탁해 (6)
  2. 2009.04.08 사월이어라 (4)
  3. 2009.04.04 엄마..안녕 (9)
  4. 2009.02.17 기도해주세요. (8)
  5. 2008.02.29 베푸는 삶 (14)
동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스토리타임에 매주 참석하는 바다때문에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꼭 도서관엘 간다. 30분 하는 스토리타임이 끝나면 바다가 볼 만한 책들이나 원하는 DVD도 고르고..또 나를 위해서는 도서관 한쪽에 비치되어 있는 한국어 도서코너에 가서 요즘 베스트셀러에 올라 화제가 된 책중에 신경숙님의 엄마를 부탁해를 빌려왔다.

그동안은 책을 빌려보기보다는 화제가 된 책들은 주문해서 누구보다 먼저 읽어보곤 하였는데.. 이젠 그럴수없게 되었지만 이렇게 동네 도서관에서 좀 몇달 늦더라도 신간들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해줘서 참 감사한 마음이다. 일반서적에 비해 종교서적이 그닥 많지 않은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이 소설의 이야기는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 지하철 역에서 실종되면서 시작되는데... 가족들이 사라진 엄마의 흔적을 추적하며 잊혀졌던 기억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늘 곁에서 무한한 사랑을 줄 것 같은 존재였던 엄마가 실종됨으로써 가족들은 무심히 잊고 지내던 엄마에 대한 기억을 하나 둘 되살리게 되면서..실종된 엄마는 가족들에게 더욱 소중한 존재로 다가오는것을 알수 있다.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기 이전에 이미 엄마를 거의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잃다'와 '잊다'가 같은 말이었음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해설 정흥수님-

책을 읽는 내내..얼마전 세상을 떠나신 엄마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겁고..엄마는 내가 무얼하든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었으며.. 언제나 끝없이 헌신하며 항상 무엇이든 베풀어 주던 모습이 떠올라 흐느껴 울었다.

특별히 5월 7일은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생신이었다. 작년 겨울쯤 엄마는 내게 내년 당신 생일에 널싱홈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그리고 직원분들께 생신떡을 해서 돌리고 싶다시며 부탁을 하셔서 엄마..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그럼 매년 엄마 생신에는 꼭 떡을 해서 돌릴께요.. 하고 약속했었는데..

엄마는 생신떡을 한번도 못 돌려보시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된 것이었다.

5월 10일 어머니날엔 엄마가 안계시다는 그 자체로도 너무 허전하였지만.. 언제든 나를 응원해주던 엄마가 이젠 곁에 없구나 싶으니..슬프기까지 하였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리스트

 
Posted by 에젤
화요일 오전 10시..어머니의 환송예배와 함께 하관예배를 드렸습니다. 살아생전 특별한 날이면 꺼내입으시던 고우신 한복을 입으시고 화장을 예쁘게 하신 어머니는 이미 몸은 싸늘하게 식었지만 너무도 곱고 평안한 안식가운데 거하시는듯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가족장으로 장례절차를 밟아 어머니를 보내드리면서 어머니가 고통이 없는곳에 편히 계심을 믿으니..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편해졌습니다. 물론 따뜻한 엄마의 품도..말소리도..그리고 이젠 만져볼수도 없다는건 가슴이 아프지만..



어머니는 떠나셨지만..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남겨주신 신앙의 유산은 길이 남아 자손들에게 전해지고 간직될것이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번일을 계기로 제게 포용하는 사랑이 필요함을 봅니다.  억지로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내안에 사랑하는 마음이 차고 넘쳐서 흘러가길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의 딸로 내 아이들에게 어머니처럼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할것인데..늘 부족하여 마음아픕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아무일 없는 듯 미소지으며 살고있지만 아직도.. 빠이하시던 어머니의 마지막 손짓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14:13)

Posted by 에젤
올 2월 중순경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던 어머니께서 오늘 새벽..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워낙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일년에 한두차례 자주는 서너번 입원을 하셔서 치료를 받으시긴 하셨지만 그동안 정정하셔서 좀 더 우리곁에 계실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컨디션을 알게 된 후로는 언제 떠나실줄 몰라 매일 어머니를 찾아가 식사를 드리고 양치도 시켜드리면서 어머니와의 시간을 되도록이면 많이 갖기위해 노력하였지만..가끔 컨디션이 많이 안좋으신 모습을 뵐때면 참 마음이 아파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시기 이틀전부터는 컨디션이 더 안좋으신지 말씀도 없으시고 즐겨드시던 하이푸로틴 음료도 안드시길래 좀 걱정이 되었는데 이렇듯 주무시다가 고통없이 하늘나라로 가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영원히 주무시기 전날 밤..다솜이랑 엄마를 찾아갔을때..어머니는 저를 알아보시고 안아도 주시고 이제는 힘이 약해진 손으로 제 손을 계속 만지고 계셨는데..왠지 그날은 엄마가 내가 가야겠다고 해도 손을 잡고 안 놓으셔서 좀 더 있다가..엄마가 이제 가라고 손짓을 할때 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구나 싶으니 눈물이 납니다. 더 있다 올걸 싶어....

머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간호사에게 말을 했더니 간호사가 통증약을 들게하자 곧 진정이 되어 주무실것 같아 안녕히 주무시라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는데 어머니는 그렇게 그 밤에 주무시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질 않으셨지요.

어머니가 깨어나질 않자 널싱홈에서는 이머전시로 병원으로 옮기셨고..제가 병원에 도착해서 만난 어머니는 평화롭게 숨을 쉬면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어쩌면 며칠 저렇게 깨어나질 못하고 주무시다 가실수도 있고 잠깐 기력을 차릴수도 있다고 하여 며칠 더 엄마를 볼줄 알았는데..오늘 새벽 2시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나와 다솜이를 향해 가라고 손짓을 하며 다솜이가 '빠이 할머니' 하자 빠이 손을 흔들던 침대위의 작고 연약한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데..입에서는 자꾸 감사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렇게 주무신채로 평안히 고통없이 하늘나라 가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기도가, 자식들의 기도가 응답이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주신 이웃님들께도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든것이..

Posted by 에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버지 살아생전..다정했던 두분의 모습.


요 며칠..잠도 제대로 못자고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몸이 편찮으셔서 입원하셨던 어머니가 우리 생각보다 큰 병에 걸린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퇴근 후..저녁을 먹고 바다아빠랑 어머니가 계시는 널싱홈엘 다녀왔는데..곤히 주무시던 어머니는 눈을 뜨고 우릴 반갑게 맞아주시네요.


아직도 엄마의 손을 잡으면 기운이 넘쳐납니다.
얼굴엔 주름이 많지만 여전히 애기피부처럼 곱고 부드러운 엄마의 얼굴입니다.
그동안 아랫배가 아릿하게 아팠다고 하는데..그게 왜 그런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열흘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계시던 어머니께서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어요. 나이가 워낙 많으신지라 병원에서 권하는 치료는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치료 뿐이라고 합니다. 아주 약한 치료라고 하나, 그래도 연세가 있으신 어머니께는 힘든 치료가 될것이라고 합니다. 치료할때 동반되는 증상(설사)도 있을수 있고.. 만약 어머니께서 기운이 없고 힘들어지시면 중단할 수밖에 없는 치료이기도 합니다.


기도 부탁합니다.
연세보다 강건하신 어머니시지만..5주간의 치료동안 어머니의 기력이 쇠하지 않기를 기도해주세요. 꼭....


늘 기도할때마다 아프지말고 평안히 주무시다 하늘나라 가도록 기도한 어머니의 기도가 이뤄지기를..저의 기도가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Posted by 에젤
제가 아주 어렸을때 우리집 부엌은 앞뒤로 빗장을 지르는 문이 있고 마루쪽으로 작은 문이 하나 있는..좀 큰 부엌이었습니다. 한쪽으로 장작이나 나뭇가지들도 쌓아놓고..양쪽으로 큰 가마솥이 있었습니다. 그 부엌이 일주일에 한번은 목욕탕이 되기도 하였는데.. 가마솥에 뜨거운 물을 가득 데워 빨간 통안에서 목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이면 춥다고 목욕하기 싫어하는 나를 억지로 데려가 어머니는 늘 때도 밀어주고 깨끗하게 해주셨는데..요즘 같으면 일주일에 한번 하는게 자주 안씻는거지만..그 시절만해도 자주 안씻은 사람이 명절이 돌아오면 깨끗이 목욕을 하던 시절이라.. 나는 왜 이렇게 자주 하느냐며 우는 소리도 했는데.. 그때 어머니는 내일이 주일인데 그럼 씻지도 않고 교회에 가느냐며 혼을 내셨지요.  아직도 그때의 그 습관이 있으셔서 그런지 널싱홈에 계신 지금도 매주 토요일이면 주일 예배를 위해 목욕을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손이 참 크십니다. 그냥 손이 아니라 베푸는 손 말이지요..


가마솥에 밥을 하실때는 전기밥솥도 없었고 여러가지로 열악한 환경이었는데도..늘 스텐레스 밥그릇에 밥을 떠서 뚜껑을 덮어 부뚜막이 따뜻할때는 부뚜막 위에..부뚜막이 식으면 안방 아랫목에 이불로 덮어두시곤 하셨습니다. 추운날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군불을 때서 따끈한 안방 아랫목에 무턱대고 손 발을 집어넣었다가 밥그릇을 엎기도 하였는데 어머니 아실세라 몰래 원상복구 한 적도 있었습니다.


늘 우리집은 밥을 넉넉히 하여 찾아준 사람이 없어 밥이 남게되면..그 다음날 아침 전날 남은 밥을 다시 새밥위에 얹어서 어머니랑 큰 언니는 약간 풀어진듯한 그 밥을 드셨습니다. 어쩌다가 많이 남아 언니가 내게도 퍼주면..새밥 달라고 밥이 맛이 없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요.^^;


얼마전 어머니께서 얘기하시는 중에..특별히 혼자 사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늘 그 분을 생각하면서 밥을 더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동생" 하고 부르면서 찾아오면 어머니는 싫은 내색없이 어서 들어오라며 방문을 열어주었고.. 우리가 식사를 다 마친후라도 항상 그분이 오면 밥을 차려주셨습니다. 혼자 사는데 밥해먹기가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느냐며..


지금 생각하면 여러가지 일로 피곤하실텐데 어머니의 그렇게 몸에 밴 베푸는 삶이 너무 귀하게 느껴집니다.  저같으면 억지로 해주는것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날것 같으니까요.^^;;


전 사람들이 자주 집에 오는게 때론 귀찮아 인사도 안하고 내 방에서 꼼짝 안할때도 많았습니다. 그런 저를 늘 어머니는 믿어주시고 우리애가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대신 인사를 해주곤 하였지요..글을 쓰면서 예전 제 모습을 생각하니  깐깐한 사춘기를 보낸듯합니다.^^;


문득 어린시절 즐거웠던 기억이 하나 떠오르는데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아버지가 은퇴하시면서 우리집에 tv를 사오셨는데 다른 집에 tv가 많지 않았을때  tv를 사셔서 tv가 없는 동네 사람들이 저녁이면 집에 와 tv를 통해 뉴스도 보고 연속극도 보았습니다.


우리집 안방이 좀 크다고 아버지 친구분들이나 어른들이 오셔서 tv를 독차지 하면 저는 하는수 없이 다른집으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기위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깝게 사는 친구네가 제가 좋아하는 연속극을 시청안하면 그걸 보기위해 멀리있는 다른 친구집이라도 가야했으니까요. 집집마다 tv를 갖게 되기까지 그렇게 동네잔치 하듯 친구들과 tv를 보러다니던 기억은 늘 즐거운 추억중에 하나인듯 합니다.


아버지가 은퇴하고 집에 계시면서 우리집은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는데.. 안채를 아파트처럼 신식 부엌에 화장실과 욕실을 넣고 보일러를 달았습니다. 군불을 안때도 되고..전기밥통에 밥을 하고..개스레인지에서 음식을 만드니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 된거지요.


어머니는 전기밥통이 생기자 누가 와도 식은밥 안줘서 너무 잘되었다며 좋아하셨고.. 언제든 아무때나 배고픈 사람이 찾아오면 금방 개스레인지에 국을 데워 줄수있으니 좋아하셨습니다. 일년에 몇차례 집에서 죽을 쑤면..동네 사람들이 "이집 죽썼다며?.." 지나가다 소문듣고 찾아와 먹고 가던 기억도 납니다..달리 베푸신것도 많았지만 항상 사람들에게 밥을 먹여주던 기억이 제일 많아  어머니의 부엌이야기를 써봅니다.


인정이 많고 막내를 많이도 사랑해주셨던 어머니밑에서 자란탓에..저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가면서 고향을, 그리고 어머니를 참 많이 그리워했던것 같습니다. 서울에 사시는 친척 고모집엘 찾아가면 늘 엄마처럼 대해주셔서 그 고모집을 어머니가 보고싶거나 하면 찾아가곤 했으니까요.


그렇게 베푸는 삶을 아버지도 어머니처럼 똑같이 하셨습니다. 집에 늘 사람들이 찾아와서 북적여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으셨지요.. 객지에 일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어른들부터 동네오빠나 언니들.. 누구든지 집에 들러 아버지께 다녀왔다고 인사를 하고..특별히 챙겨줘야할 사람들에겐 여비도 늘 주셨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결혼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엘 가면 와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여비를 주셨습니다. 항상 제가 가져간 선물보다 더 많은 여비를 타오곤 했습니다. 싫다고 하여도 늘 빈손으로 자식들을 보낸적이 없는 우리 부모님..그렇게 남을 돕고 베푸는 삶을 당연한것으로 여기며 사신 부모님이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 알아가는 이제야....너무 존경스럽습니다.


Posted by 에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