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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는 삶'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3.01 베푸는 삶 14
제가 아주 어렸을때 우리집 부엌은 앞뒤로 빗장을 지르는 문이 있고 마루쪽으로 작은 문이 하나 있는..좀 큰 부엌이었습니다. 한쪽으로 장작이나 나뭇가지들도 쌓아놓고..양쪽으로 큰 가마솥이 있었습니다. 그 부엌이 일주일에 한번은 목욕탕이 되기도 하였는데.. 가마솥에 뜨거운 물을 가득 데워 빨간 통안에서 목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이면 춥다고 목욕하기 싫어하는 나를 억지로 데려가 어머니는 늘 때도 밀어주고 깨끗하게 해주셨는데..요즘 같으면 일주일에 한번 하는게 자주 안씻는거지만..그 시절만해도 자주 안씻은 사람이 명절이 돌아오면 깨끗이 목욕을 하던 시절이라.. 나는 왜 이렇게 자주 하느냐며 우는 소리도 했는데.. 그때 어머니는 내일이 주일인데 그럼 씻지도 않고 교회에 가느냐며 혼을 내셨지요.  아직도 그때의 그 습관이 있으셔서 그런지 널싱홈에 계신 지금도 매주 토요일이면 주일 예배를 위해 목욕을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손이 참 크십니다. 그냥 손이 아니라 베푸는 손 말이지요..


가마솥에 밥을 하실때는 전기밥솥도 없었고 여러가지로 열악한 환경이었는데도..늘 스텐레스 밥그릇에 밥을 떠서 뚜껑을 덮어 부뚜막이 따뜻할때는 부뚜막 위에..부뚜막이 식으면 안방 아랫목에 이불로 덮어두시곤 하셨습니다. 추운날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군불을 때서 따끈한 안방 아랫목에 무턱대고 손 발을 집어넣었다가 밥그릇을 엎기도 하였는데 어머니 아실세라 몰래 원상복구 한 적도 있었습니다.


늘 우리집은 밥을 넉넉히 하여 찾아준 사람이 없어 밥이 남게되면..그 다음날 아침 전날 남은 밥을 다시 새밥위에 얹어서 어머니랑 큰 언니는 약간 풀어진듯한 그 밥을 드셨습니다. 어쩌다가 많이 남아 언니가 내게도 퍼주면..새밥 달라고 밥이 맛이 없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요.^^;


얼마전 어머니께서 얘기하시는 중에..특별히 혼자 사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늘 그 분을 생각하면서 밥을 더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동생" 하고 부르면서 찾아오면 어머니는 싫은 내색없이 어서 들어오라며 방문을 열어주었고.. 우리가 식사를 다 마친후라도 항상 그분이 오면 밥을 차려주셨습니다. 혼자 사는데 밥해먹기가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느냐며..


지금 생각하면 여러가지 일로 피곤하실텐데 어머니의 그렇게 몸에 밴 베푸는 삶이 너무 귀하게 느껴집니다.  저같으면 억지로 해주는것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날것 같으니까요.^^;;


전 사람들이 자주 집에 오는게 때론 귀찮아 인사도 안하고 내 방에서 꼼짝 안할때도 많았습니다. 그런 저를 늘 어머니는 믿어주시고 우리애가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대신 인사를 해주곤 하였지요..글을 쓰면서 예전 제 모습을 생각하니  깐깐한 사춘기를 보낸듯합니다.^^;


문득 어린시절 즐거웠던 기억이 하나 떠오르는데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아버지가 은퇴하시면서 우리집에 tv를 사오셨는데 다른 집에 tv가 많지 않았을때  tv를 사셔서 tv가 없는 동네 사람들이 저녁이면 집에 와 tv를 통해 뉴스도 보고 연속극도 보았습니다.


우리집 안방이 좀 크다고 아버지 친구분들이나 어른들이 오셔서 tv를 독차지 하면 저는 하는수 없이 다른집으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기위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깝게 사는 친구네가 제가 좋아하는 연속극을 시청안하면 그걸 보기위해 멀리있는 다른 친구집이라도 가야했으니까요. 집집마다 tv를 갖게 되기까지 그렇게 동네잔치 하듯 친구들과 tv를 보러다니던 기억은 늘 즐거운 추억중에 하나인듯 합니다.


아버지가 은퇴하고 집에 계시면서 우리집은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는데.. 안채를 아파트처럼 신식 부엌에 화장실과 욕실을 넣고 보일러를 달았습니다. 군불을 안때도 되고..전기밥통에 밥을 하고..개스레인지에서 음식을 만드니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 된거지요.


어머니는 전기밥통이 생기자 누가 와도 식은밥 안줘서 너무 잘되었다며 좋아하셨고.. 언제든 아무때나 배고픈 사람이 찾아오면 금방 개스레인지에 국을 데워 줄수있으니 좋아하셨습니다. 일년에 몇차례 집에서 죽을 쑤면..동네 사람들이 "이집 죽썼다며?.." 지나가다 소문듣고 찾아와 먹고 가던 기억도 납니다..달리 베푸신것도 많았지만 항상 사람들에게 밥을 먹여주던 기억이 제일 많아  어머니의 부엌이야기를 써봅니다.


인정이 많고 막내를 많이도 사랑해주셨던 어머니밑에서 자란탓에..저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가면서 고향을, 그리고 어머니를 참 많이 그리워했던것 같습니다. 서울에 사시는 친척 고모집엘 찾아가면 늘 엄마처럼 대해주셔서 그 고모집을 어머니가 보고싶거나 하면 찾아가곤 했으니까요.


그렇게 베푸는 삶을 아버지도 어머니처럼 똑같이 하셨습니다. 집에 늘 사람들이 찾아와서 북적여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으셨지요.. 객지에 일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어른들부터 동네오빠나 언니들.. 누구든지 집에 들러 아버지께 다녀왔다고 인사를 하고..특별히 챙겨줘야할 사람들에겐 여비도 늘 주셨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결혼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엘 가면 와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여비를 주셨습니다. 항상 제가 가져간 선물보다 더 많은 여비를 타오곤 했습니다. 싫다고 하여도 늘 빈손으로 자식들을 보낸적이 없는 우리 부모님..그렇게 남을 돕고 베푸는 삶을 당연한것으로 여기며 사신 부모님이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 알아가는 이제야....너무 존경스럽습니다.


Posted by 에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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