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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1.24 신앙의 유산 13

얼마전 널싱홈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퇴원을 하셨습니다. 항상 간호원이 상주해있고 유태인 주치의가 틈나는대로 널싱홈을 방문하여 어머니의 건강상태를 첵업하는데..이번엔 혈압이 많이 높으시고 혈액이 깨끗치 못하다고 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 스웨디쉬 병원에 입원을 시키시고 어머니의 몸을 돌봐주신듯 합니다. 이머전시로 가신것이 아니기에 시간나는대로 어머니가 계시는 병원에 다녀오곤 하였는데.. 말동무가 없어 심심해 하시는 어머니에게 어머니께서 예전에 예배당이 없는 우리 고향에 예배당을 건축했던 얘기를 참 기쁘게 감사함으로 들었습니다.


제가 너무 어렸을적 얘기라 대충만 알고 지냈던 이야기들..그리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내가 모르던 교회 재건축 이야기들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좋았는지..자꾸 자꾸 들어도 신이났습니다. 어머니도 다른 얘기보다 교회 건축하는 얘기만 하시면 더 초롱초롱해지시고 얼굴이 편안해지심을 느낄수 있었습니다..훌륭한 신앙의 본을 가지고 계신 엄마를 대하면서 내가 엄마의 딸인것이 참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엄마에게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노안으로 눈이 먼 시어머니와 많은 전답을 가진 외아들인 아버지께 열일곱의 어린나이에 시집을 왔습니다. 어린나이에 친정이 가난하여 입이라도 덜어보고자 시집을 왔다고 하십니다.  우리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참 이쁘십니다. 해방전이라 아버지는 일본엘 가시게 되었고..어머니는 혼자서 그 많은 농사와 살림을 눈먼 시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꾸려가셨습니다. 그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집에와서 하루 일을 도와주면 보리쌀 몇되 퍼주면 되니까 일해주는 사람들을 데리고 그 모든 집안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어렸을적 나를 봐주는 언니도 있었습니다. 우리집에 와서 밥만 먹어도 좋았던 집들이 참 많았다고 합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더라도 농사를 지을수있는 땅이 있는 집들은 그래도 형편이 더 나았던것 같습니다. 집안일을 거들게 할 목적으로 우리집은 늘 함께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특별히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닐수 없는 형편의  친척오빠나 언니들이 자주 살았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이라도 좀 모으고 도시로 갈 길이 열려 도시로 나가면 또 다른 친척오빠나 언니들이 살러왔다고 합니다.


또 아버지 친척중에 일찍 부모님을 여읜 오빠와 언니를 데려다 키우시고 우리집 호적에  아들과 딸로 올리기도 하셨는데..그 오빠는 몇년전 병으로 돌아가시고..언니는 부산에서 사십니다. 호적상으로 보면 우리집은 9남매인 대가족이기도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낳으신 자식들은 모두 7남매로 제일 큰 오빠는 정말 영특했는데 어린나이에 죽었다고 합니다. 늘 그 오빠 얘기가 나오면 아쉬워하시지요.. 맨위로 언니가 셋이고..그 밑으로 아들 둘에..그리고 제가 막내입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모두 서울에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양재기술을 배워 양장점을 차려 동생들이 좀 크면 모두 서울로 데려갔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일손을 덜어줄 자식들이 없었습니다. 언니들이 집안일만 거들고 있기에는 너무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던 것 같습니다.  딸들을 공부시켜 뭐하느냐는 집안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 일손이 많이 필요한데도 어머니는 자녀들을 모두 서울로 올려보냈다고 합니다. 더 잘되어 보라고..


아버지는 일본에서 돌아오신후..마도로스가 되어 해외로만 다니시다 4년 5년만에 한번씩 귀국하셨다 또 떠나는 직업을 가지셨기에 어머니는  인고의 세월을 참 열심히도 살아가신듯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사연이 너무 많습니다. 글을 배우고 싶어서 야학을 다녔는데..시어머니와 친척들의 반대로 그 뜻을 못이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안계시니..젊은 며느리가 밖으로 나다니면 혹 좋지않은 소문이라도 날 것을 염려하신 어른들로 인해 그리된듯 합니다. 아무튼 지금도 글을 못읽으시는 것을 그때 그시절 얘기를 하시며 속상해하시니까요.. 아버지는 글을 잘 쓰시고 일본어도 잘 하시니 아버지 돌아가시면 어찌사누..하셨는데 이렇게 널싱홈에서 숫자를 외워 엘리베이터도 잘 타시고..영어도 못하시면서 그냥 한국말로 간호원들에게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면서 얘기를 하시면 모두 알아들어 불편함이 없다고 하십니다. 물론 한국 간호사와 한국부 직원들이 있긴 하지만..가끔 자리에 없을때 하는 얘기입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 기억이 아직 초롱초롱 하실때..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신 어머니에 대해 기록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2탄,3탄..몇탄이 될지 모르지만..기대해주세요..ㅎㅎ

Posted by 에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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