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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6.02.06 가정세미나 4
이 세미나는 2005년 11월 시카고 벧엘장로교회에서 열린 가정사역 세미나중..
마지막날 주일예배때 한 내용으로..테입으로 듣고 요약을 하였다.



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이야기인 사연으로 살게 되었을까?
원래 하나님의 이야기인 오리지날 스토리가 있었을텐데.. 왜 사연으로 살게 되었는지
왜 가정해부학인지. 왜 가정이 죽었는지 성경을 통해서 증명해보는 시간을 갖고
어떻게 우리가 살것인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창 2:15-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가정에 대한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이다.
가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여주시는 구절이라고 하셨다.


도은미 사모님은 당신이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하면 가정사역자로서..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가정사역에 다른 어떤 얘기보다 중요한 얘기라고 하시면서 강조를 엄청 하셨다는..^^
하나님께서는 가정이란 것을 있게 하시면서..
-다스리라, 지키라- 하셨는데..다스리라는 인사이드 에덴동산을 경영하라는 것이고
지키라는 방어하다,보호하다란 뜻으로 아웃사이드 그 무엇으로부터 지키라고 명하셨다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당시에 에덴동산에 무엇이 있어서 지키라고 하셨을까? 뭐땜에..
바로 사단이 있어서..
사단이 왜 거기에 있었을까? 창세기 1장 2절 말씀을 영어로 읽어보면..
"Now the earth was formless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한국말인 혼돈하다는 의미는 질서가 없이 어지럽혀진 상태나 흐트러져 있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말 성경에 기록된 혼돈은 한문의 혼돈으로 아무것도 없이 공허한 상태를 나타낸다고 하지만
읽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상으로.. 혼돈으로 기록된 것은 우리 한국말 성경이 잘못 기록 되었다고 한다.
영어나 다른 나라 말 성경은 모두 Formless 로 되어있다고 한다.
Form이 없고 텅비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땅이 없고..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이 흑암이는 주어로서 어두움이 이미 깊음위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사단은 에덴동산이 창조되기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말이된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더라.. 우리가 아는 물이아닌.. 모세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상태를 설명하며 성경을 적어내려갔는데.. 하나님의 움직임을 그렇게 표현한거라고 하셨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언어로 표현된 것이라고한다.
마치 하나님께서 물위를 걷는 것 처럼..
빛이 있으라.. 흑암이 깊음위에 있는 곳에다 대고 천지창조를 하신 것이다.
깊음은 나중 다른 성경에 공중에 권세잡은자의 공중과 연결된 단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빛으로 자신을 나타신 것으로..나 여기 있다~! 자기의 임재를 마크하시는 순간이라고 말씀하셨다.
어쩜 이렇게 쉽게 잘 풀어서 설명을 해주시는지.. 그냥 이해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사람에게 다스리고 바깥으로부터 오는 방해로부터 지키라고 하셨다.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자유하게(임의대로) 먹으라고 명령하셨고,지키라에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하셨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들어서 우리를 힘들게 하셨을까?
솔직히 이런 의문 안든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나도 한때는 그런 질문을 했으니까..

에덴동산에 나무이름 아는것이라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뿐인데..성경에 나와있으니까..
만약 우리가 시험을 치른다고 가정하고.. 두 나무외에 또 무슨나무가 있을까?


동산 나무들의 이름은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나무들인데 하나님께서 동산에 좋고 아름다운 것들이 나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나무들이 났다고 가정하고..그래서 다른 나무의 이름을 guess해보았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생각하면...사랑나무, 믿음나무,희락나무, 충성나무,오래참음나무..등등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나무들로
그것을 따먹고 다스리는..즉, 온유를 먹고 온유함으로 다스리고..오래참음을 먹고 오래참음으로 다스리는..
즉,선한 것을 먹고 선한 것으로 다스리는 것이다.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그 하나님의 성품중 하나로 우리를 골탕먹이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때 동산에 좋고 아름다운나무들이 충만하라고 하셨을 때 생긴 나무 이름중 하나라는 것이다.


근데 왜 이것은 먹으면 안된다고 하셨을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이니까 사단으로부터 지킬려면 악을 모르면 되는데..그래서 먹지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사람을 뭐라고 보셨냐면.. 독처하는 자라고 보시고 돕는 배필인 두 번째 사람을 만드시는데..
창세기 2장에 보면18절과 20절에 돕는배필이 두 번이나 나온다.
이 배필이라는 단어앞에 있는 돕는-에젤Ezer-이란 단어는 보통 단어가 아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만 붙일 수 있는 형용사라고 한다. 에벤에셀 Eben Ezer의 하나님..


여자라는 단어는 아담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창세기 2장 23절에 "..내 뼈중의 뼈요 내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나님은 남자 여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신적이 없으시다.
우리는 보통 돕는 배필하면.. first를 돕는 second로나 생각하고 시다발이나 헬퍼 쯤으로 아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 에젤이라는 단어가 배필앞에 붙여졌을까? 독처라는 것이 뭐길래 하나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왜 배필앞에 붙이셨을까? 하나님의 실수로??
도은미 사모님은 독처가 무슨뜻인지 하나님께 물어보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아담한테 돕는 배필을 데려왔을 때.. 그때는 이미 창조된 모든 동물들한테 이름을 다 지어주고 아무런 할 일이 없을때라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돕는 배필, 헬퍼라면..아담이 이름을 지어주기전에 옆에 있어서 그건 별로다..이렇게 지으면 어떨까? 좀 쉬면서 하라는 둥..이렇게 할텐데.. 이미 다스리고 이름을 다 지어준 상태였으므로 사실 헬퍼가 필요없었다.
아내 때문에 아담은 다시한번 자기가 지어주었던 동물의 이름들을 아내에게 새롭게 다 가르쳐야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내는 아는게 아무것도 없었고 반면 남편인 아담은 아는게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다.
다스리는 파트는 아담이 너무 잘했지만.. 지킨다는 파트는 사단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도와주어야겠구나..그래서 배필을 붙여 돕게하겠다고 보낸게 에젤이라는 것이다.
에젤은 지키는 파트 때문에 온 자다.


독처란..사람이 홀로 있어서 감정적으로 외로와 짝이 필요한 상태라 해석할 수 없고..
하나님이 명령한 다스려라, 지켜라, 먹어라, 먹지말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홀로 붙잡고 살아가는 상태를 말한다.고 하셨다.
돕는 배필은 다스리기위해 온 것이 아니라.. 뱀과 맞서 싸우는자다.
뱀이 질러놓은 불이 있다면 그불에 맞불 질러 뱀과 맞서 싸워 이기는 자인데..
문제는 여기있는 아내는 자기가 돕는 배필인지 몰랐다는데에 있다.
여기에 아담의 첫 번째 실수가 있다.
아담은 하나님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서 여자라 칭하였다.
그동안 했던일이 이름을 주는것이었으므로.. 하나님이 에젤이라는 이름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아담은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서 여자라고 불렀다.에젤은 이 여자에게 정체성적인 단어인데 한번도 들려준 적이 없었다.
남자는 뼈와 살로 된자로.. 하나님이 주신 돕는배필을 영적인 존재로 못보고 육적인 존재인 여자로 보았다.


원래 가정은 독처하는 자가 돕는 배필을 만나서 이루는걸 가정이라 한다.
오리지날 스토리가 독처하는 자가 하나님앞에서 말씀을 붙들고 홀로 이행하면서 사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내가 이 지키는 파트는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시고 돕는 배필을 보내주시므로 생겨난 것이 가정이란 것이다.


여자 말 들어서 제대로 된 가정이 없다? 아담을 비롯하여 신세 망치는 사람 많다는..
누구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하는가? 에젤의 말은 들을줄 알아야 한다.
보통 세상 여자로 살고있으면 난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에젤은 무서워해야 한다.
창세기 3장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뱀과 원수가 되게 하는 여자, 영적인 여자가 나오는데..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와..많은 세월을 뱀과 맞서 싸워야하는데 남편과 맞서 싸웠다니..ㅋㅋ
여자는 에젤이다. 여자이기 이전에 에젤이었다.


아담의 두 번째 실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창세기 3장 2-3 절에보면 여자가 뱀과 맞부딪혔는데..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지키는 파트에 속했는데.. 뱀의 질문에 대답하는 말에 잘못된 부분이 세군데 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동산중앙에 있는 나무라는 여자의 말은 위치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라고 말씀하셨고..만지지도 말란 말씀은 하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지 죽을까 한다는 애매모호하게 말씀하지도 않으셨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쳤어야 하는데..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게 된것은 전부 첫번째 사람 아담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여자는 미혹을 받아..라고 써있고, 아담의 죄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만큼 독처한다는것이 중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만약.. 아내가 선악과를 먹은 후..남편에게 가서<여보..내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 먹었어요. 당신도 한번 먹어봐요.> 하고 말을 했을때..
아담이 독처하는 영성으로 <아니..이사람이 지금 큰일 날 소리를 하네..그걸 먹으면 어떻게 해..> 하며
하나님앞에 여자를 데리고 가서 자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안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내가 에젤이라는거..정말 그동안 너무 그것을 모르고 육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온 것을 발견했다.
영적인 정체성을 회복하고 가정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한몫 하는 에젤이 되어야겠다.
Posted by 에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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